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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계인사들이 브리저튼 가의 가장 무도회에 어떠한 의상들을 골라 입고 올지
본 필자 숨죽이고 기다리는 바이다 엘로이즈 브리저튼 양은 잔다르크 의상을
최근 아일랜드에 있는 사촌을 방문하고 돌아와 데뷔 세번째 시즌을 맞는 페넬로페페더링턴
양은 레프리콘 의상을 입을 거란 소문을 전해들었다 작고하신 선대 펜우드 백작의 의붓딸
포시 레일링 양은 인어 의상을 입을 계획이라 하는데 본 필자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의 언니인 로자먼드 레일링 양은 본인이 어떤 의상을 입을 것인지
입을 꼭 다물고 있다 다른 가장 무도회를 거울 삼아 추측해 보자면 배가 나온 남자들은
헨리 8세의 의상을 입을 것이요 좀더 몸매가 좋은 이는 알렉산더 대왕이나 악마 의상
이러한 행사를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는 이들은(결혼 적령기에 도달한 브리저튼 가의 두 형제는 당연히 이 부류에 속한다) 평범한 검정색 예식용 의상에 가장 무도회라니까 형식적으로
반가면이나 걸칠 것이 뻔하다
네이디 휘슬다운의 사교계 소식 1815년 6얼 5일
"저와 함께 춤춰 주세요" 소피가 충동적으로 말했다
그는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지만, 그의 손가락이 어느새 그녀의 손가락을
단단하게 얽어매었다 "춤추는 법을 모르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베네딕트는 오랫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 안에 그녀가 담겼다
잠시 후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따라와요"
그녀를 등뒤로 이끌고 두 사람은 복도를 걸어 계단을 올라가 모퉁이를 돌았다
그러자 눈앞에 프렌치 도어가 나타났다 베네딕트가 철제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어젖히자 두 사람 앞에 화분 몇 개와 두 개의 긴 의자가 놓인
조그맣고 텅 빈 테라스가 나타났다
"여기는 어디지요?" 소피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무도회장의 테라스 바로 위쪽이지요"
그는 테라스 문을 닫았다 "음악이 들리지 않습니까?"
들리는 것은 대부분 낮게 웅얼거리는 듯한 끝도 없는 대화 소리였지만,
귀를 쫑긋 세워 보니 희미하게 오케스트라의 연주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헨텔이로군요" 그녀가 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제 가정교사도 이것과 똑같은 음악이 나오는 뮤직박스를 가지고 있었답니다"
"가정교사를 꽤나 좋아하셨던 모양입니다"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 눈을 감고 음악에 맞춰 콧노래를 부르고 있던
그녀는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어떻게 아셨지요?" "레이디께서 시골에 계실 때 더 행복했을 거란
사실을 아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요 베네딕트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뺨을 만졌다
장갑을 낀 손가락 하나가 천천히 그녀의 피부를 타고 내려가 턱 선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얼굴에서 읽을 수 있어요"
그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네 그 어느 누구보다 그분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신 것 같군요"
그가 낮게 말했다 "그럴 때도 있었고"
그녀는 발코니 끝으로 걸어가 난간에 손을 얹고 잉크를 풀어 놓은 듯
새카만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지요"
그녀가 갑자기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몸을 홱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지요" 드녀가 갑자기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몸을 홱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베네딕트는 그녀가 더 이상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다 "당신의 어린 시절은 외로움과 거리가 멀었겠군요"
그녀가 말했다 "형제와 누이들이 그토록 많으셨으니"
"내가 누군지 아는군요" 그가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몰랐었지요" 그는 난간으로 걸어가 한쪽 엉덩이를 거기에 걸치고 팔짱을 끼었다
"어쩌다가 들통이 났을까요?" "당신이 아니라 동생분 때문이었어요, 사실 너무너무 닮으셔서........."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도 말입니까?"
"가면을 쓰고 계셔도요" 그녀가 응석을 받아 주듯 미소를 지었다
"레이디 휘슬다운이 형제분들 얘기를 자주 썼던걸요 기회만 생기면 다들 얼마나 닮았는지
꼭 한 마디씩 하고 넘어가잖아요"
그렇다면 제가 형제 가운데 누구인지도 아십니까?"
"베네딕트" 그녀가 말했다 "물론 당신이 형제들 가운데 가장 키가 크다는 레이디 휘슬다운의 말이 맞았다는 가정에서 말하자면요"
"예리하시군요" 소피는 약간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래 봐야 가십 신문을 읽은 것뿐인데요 여기 계신 다른 분들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베네딕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자신의 정체에 대해 또 한 가지 단서를
제공했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휘슬다운을 보고 그가 누군지 알았다면 아마 사교계에 데뷔한 지 멸로 오래 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아니 어떠면 아예 데뷔조차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간에 어머님이 소개시켜 주신 수많은 젊은 레이디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란 얘기다
"저에 대해 휘슬다운에서 또 뭐라고 했답니까?"
베네딕트가 천천히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지금 찬사를 듣고 싶어서 그러시는 건가요?" 그녀는 입 꼬리를 눈에 보일락 말락 치켜올려 어렴풋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설마 알고 계실 테지요 브리저튼 가문만큼은 레이피어(가늘고 긴 쌍날검으로 주로 결투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그는 어깻짓을 했다 "제가 아는 한은 아닙니다 어쨌거나 아직 제 질문에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질문이었지요?" "휘슬다운에서 저에 대해 뭐라 읽으셨는지"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궁금해하시는군요?"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면, 적어도 레이디께서 저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검지 끝을 아랫입술에 얹고 멍하니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는데
그게 또 그토록 귀여워 보일 수가 없었다
"어디보자 지난달에는 하이드 파크에서 열린 시시한 경마에서 우승을 하셨고"
"전혀 시시하지 않았소"
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 덕에 재산이 백 파운드나 늘었으니까"
그녀는 꽤나 도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봐 주었다 "경마란 것이 원래 시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랍니다" "참으로 여자다운 말씀이시구려"
그가 내뱉었다 "그거야.............."
"당연한 말은 해서 무엇하겠습니까만" 그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녀는 그 말에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 외에 또 무엇을 알고 계십니까?"
"휘슬다운에서 읽은 걸로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뺨을 똑똑 두드렸다
"한 번은 여동생 되시는 분 인형의 머리를 베어 버리셨다는 거요"
"아 그얘기 아직까지도 난 그 여자가 어떻게 그 얘기를 알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오" "레이디 휘슬다운이 정말 브리저튼 가문 사람인가 보지요"
"불가능해요 뭐" 그가 단호하게 덧붙였다
"그렇다고 우리가 바보라서 그런 사기극을 벌일 능력이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나머지 가족들이 너무 명민해서 진작에 알아차렸을 거라 이거지요"
그 말에 그녀가 큰 소리로 깔깔 웃었다 베네딕트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가
또다시 자신의 정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궁금해했다
레이디 휘슬다운이 불쌍한 인형의 운명에 대해 글을 쓴 것은 이미 2년 전,
아주 초창기 칼럼에서였다 지금이야 휘슬다운이 온 영국으로 배달되고 있지만,
초창기에 그 신문을 받아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런던에 거주하는 사람들로 국한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2년 전에도 이 신비스런 레이디는 런던에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린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일까 런던에 있긴 있었되 사교계 모임에 참석하지는 않았다는 소리다
어쩌면 그녀가 형제 중 가장 막내여서 나이든 언니들이 사교계 시즌을 즐기는 동안
자신은 휘슬다운만 읽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는 그녀의 정체를 밝혀내는 데 도움이 되진 않지만 이건 아직 시작에 불과하니까
"또 무엇을 알고 계십니까?" 그가 물었다 그녀가 혹시 또 뭔가를 무심코 드러내지 않을까
잔뜩 기대하며 그녀는 이 상황이 아주 재미있는지 쿡쿡 웃었다
"당신의 이름이 특정 레이디와 심각하게 연관지어 언급된 적은 없다는 것과,
당신 어머님께서 당신을 결혼시키려고 무척이나 애쓰고 계신다는 것이오"
" 큰 형님께서 자진해서 아내를 맞이하신 후에는 어머님의 압박도 훨씬 줄어들었답니다"
"아 자작님 말씀이신가요?" 베네딕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디 휘슬다운이 그분에 대해서도 썼었지요"
"아주 자세히 썼더군요 비록.........."
그는 바짝 앞으로 몸을 숙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모든 이야기를 낱낱이 쓰지는 못했지만" "정말인가요?"
그녀가 아주 커다란 호기심을 나타냈다
"어떤 이야기를 빼놓았던가요?" 그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레이디께서 이름조차 알려주시지 않는데 제가 어찌 형님의 구애 비사를 털어놓겠습니까"
그녀는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구애란 말은 지나치군요 레이디 휘슬다운의 칼럼에 의하면.........."
"레이디 휘슬다운이 어찌 런던 구석구석에서 일언는 일의 전모를 다 알겠습니까?"
그가 약간은 놀리는 듯 장난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거의 모든 일의 전모를 알고 있지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가 생각에 잠긴 어조로 말했다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예를 들어 레이디 휘슬다운이 지금 우리와 함께 이 테라스에
함께 있다 한들 당신 정체를 알 수 있을까요?
가면 아래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베네딕트는 그 표정을 보고 일말의 만족감을 느꼈다
그는 팔짱을 꼈다
"레이디께선 어찌 생각하십니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워낙 분장을 잘한지라, 지금은 그 누구도 저를 알아보지 못할겝니다"
그는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가면을 벗어 보시면? 그러면 휘슬다운이 당신을 알아볼까요?"
그녀는 난간에서 떨어져 테라스 중앙으로 몇 걸음 내디뎠다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그녀 뒤를 쫓았다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꼭 여쭤 보고 싶었습니다"
소피는 몸을 돌렸다가 그가 몇십 센티미터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 서있는 것을
보고는 숨을 삼켰다 그가 뒤쫒아오는 소리를 듣긴 했어도 이 정도로 가까이
다가선 줄은 몰랐다 말을 하려 입을 열었건만, 놀랍게도 할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멍하니 그를 올려다볼 따름이었다 가면 뒤에서 그녀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그 짙고 짙은 눈동자만을
말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니 숨을쉬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아직도 저와 함께 춤을 추시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등에 와 닿았을 때도 그녀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의 손길이 닿은 살갗이 간질거렸다 갑자기 공기가 후텁지근해지며 더워졌다
이건 욕망이야 소피는 깨달았다 이게 바로 하녀들이 수군대던 것의 정체였어
귀족 영양들은 알아서조차 안 된다는 게 바로 이거였어
하지만 난 귀족 가의 영양이 아니잖아 그녀는 반항하듯 생각했다
난 사생아야 귀족 나리가 재미를 보려다가 우연히 태어난 산물에 불과해
난 어차피 사교계의 일원도 아니고, 평생 그리 될 수도 없는걸 그런데 내가
그들의 규율을 따라야할 이유가 뭐람?
절대로 다른 이의 정부가 되지 않겠다 맹세했었다 자신과 같은 사생아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지 않으리라고 하지만 어차피 지금 내가 그렇게
대담한 짓을 벌이려는 것도 아니잖아 한 번의 춤, 꿈결 같은 하룻밤,
그리고 어쩌면 한 번의 키스 정도는 허용할지도 모르지
그 정도로 평판이 땅에 떨어지진 않겠지 뭐, 어차피 내게 평판이란 게 있었나?
난 사교계의 테두리 밖에 존재하는걸 하지만 오늘 하룻밤만큼은 그 환타지를
맛보고 싶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도망가시지는 않으려나 봅니다" 그의 눈이 뜨겁게 흥분으로 빛났다
소피는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는 내 생각을 읽었어
누군가가 이토록 쉽게 자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껴야 마땅하건만, 틀어 올린 머리에서 빠져나온 몇 가닥의 머리카락을
장난치듯 잡아당기는 바람 때문인지, 아래층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랄지
어두운 유혹으로 가득한 오늘 밤 때문인지, 두려움은커녕 흥분을 느낄 뿐이다
"손을 어디에 얹어야 하지요?" 그녀가 물었다
"춤을 추고 싶어요" "여기 제 어깨 위에 얹으면 됩니다"
그가 지시했다 "아뇨, 조금만 아래로 네 거기에요"
"절 아주 바보라고 생각하시겠군요" 그녀가 말했다 "춤도 출 줄 모르니까"
"아니오 , 전 당신이 아주 용감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인정하셨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는 등에 얹지 않은 나머지 한 손을 천천히 치켜들었다
"제가 아는 대부분의 레이디들은 그냥 어디가 아프다거나 흥미가 없는 척을 했을 겁니다"
50원의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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