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몇 분간은 레모네이드로 참는 수밖에 업을 것 같았다 "페터링턴 양!"
큰 소리로 외친 순간 세명의 페더링턴 양이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그는 진저리를 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아무리 잘 봐주려야 억지 미소밖에 안 될 표정을 지으며 그가 덧붙였다
"어 그러니까 페넬로페 양 말입니다" 한3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페넬로페가 얼굴에서 빛을 뿜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는 자신이 페넬로페 페더링턴을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주스럽기까지 한 언니
들과 항상 몰려다니지만 않았어도 그리 끔찍한 역병 취급까지 받지는 않으련만 그녀의 언니들은 정말이지
다 자란 성인 남자에게 차라리 오스트레일리아로 유배 가는 편이 나을 거란 느낌을 준다
페넬로페에게 거의 다 다가섰다 싶은 순간 뒤편 무도회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물결처럼 퍼져오는 것이
들렸다 게속 앞으로 나아가 의무방어 댄스를 빨리 끝마쳐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슬프도다, 호기심이
앞서는 바람에 결국 돌아서고 말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여인은 평생 처음 본 '숨을 멎게 만드는' 여자였다
그녀가 아름다운지는 알 수 없었다 머리카락은 상당히 특이한 짙은 금발이어다 얼굴을 가면이 꽁꽁 가리고 있어서 보이는 것이라곤 얼굴 아랫부분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녀의 뭔가가 그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녀의 미소였을까, 눈동자의 모양이었을까, 아니면 제법 잘난 체하는 사교계의 인사들이 우스꽝스런 의상을 입고 있는 광경이 세상에서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인듯 무도회장 안을 훑어보는 그녀의 태도 때문일까 그녀의 아름다움은 내부에서 우러나는 것이었다
그녀에겐 빛이 났다 그녀 주위만 환하다
그녀는 너무도 눈부셨고 베네딕트는 그 이유가 바로 그녀가 너무나도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에 와서 행복하다 내가 나라서 행복하다란 느낌이랄까
베네딕트로선 저렇게 행복했던 적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행복해 보였다 물론 그의 인생도 상당히 괜찮은 것이었다 아니, 남들이 보기에 대단한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멋진 일곱 형제, 애정이 넘치는 어머니, 수많은 친구들, 하지만 이 여인은............
이 여인은 환희란 것을 알고 있다 이 여인을 알고 싶다 꼭 알아야겠다
페넬로페는 완전히 잊은 채, 그는 사람들을 밀치고 그녀 옆으로 다가갔다
세 명의 신사가 그녀 앞에 먼저 도착하여 갖은 아첨과 찬사를 늘어놓고 있었다 아니, 쏟아붓고 있었다
베네딕트는 흥미를 가지고 그녀를 관찰했다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어떤 여자와도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수줍은 척하지 않았다 그들이 자신의 미모 앞에 찬사를 바치며 쓰러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척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부끄러움을 타거나 킥킥 웃지도 않았다
눈썹을 치켜올리거나, 비꼬지도 않았고, 여자에게서 바라는 일반적인 반응이랄지 그러한 것들은
단 하나도 보여 주질 않았다
그녀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환하게 빛을 내뿜는달까 원래 찬사라는 것은 듣는 사람에게 기쁜 마음을 가져다 주는 법이건만, 이토록 순수하고 순정한 환희로 응답하는 여인은 처음 보았다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러한 환희를 독차지하고 싶었다
"신사 여러분, 실례합니다만 이 레이디께선 이미 저와 이번 댄스 예약이 되어 있습니다"
그는 거짓말을 했다
그녀의 가변 눈구멍은 약간 큰 편이었던지라, 그 틈으로 그녀의 눈이 꽤나 크게 휘둥그레졌다가
장난기로 반짝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내 말이 거짓말이었다고 말해 보라고 말없는 도전장을 던졌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그저 미소만 지을 따름이었다 눈부신 빛을 발하며 활짝 피어나는 그 미소가
그의 피부를 뚫고 들어와 곧장 그의 영혼을 파고들었다 자신이 내민 손에 그녀가 손을 겹친 []순간
베네딕트는 깨달았다 자신이 여태껏 숨도 쉬지 못하고 있었음을
"샤프론께 왈츠를 추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으셨나요?"
그가 댄스 플로어 앞에서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춤을 추지 않습니다"
"농담이시겠지요" "불행히도 농담이 아니랍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전.........."
그녀는 살짝 앞으로 몸을 숙이며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춤추는 법을 모른답니다"
베네딕트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타고난 우아함으로 행동하는 그녀가,
아니 그걸 떠나서 그 어떤 귀족 가문의 레이디가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춤을 배우지 않을 수가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방도는 하나밖에 없겠군요"
그가 웅얼거렸다 "제가 가르쳐 드리지요"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입술이 살짝 벌어지고, 그다음엔 놀라움이 가득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는 목소리를 진지하게 내려 애썼다
"무엇이 그토록 우스우십니까?"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ㅡ 무도회에 갓 데뷔한 여자가 아니라 오랜 학교 친구에게서나
기대할 수 있는 그런 류의 미소였다
그녀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드리운 채 말했다
"무도회에서 댄스 교습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저조차도 아는 사실인걸요"
"그게 무슨 뜻인지 궁금하군요" 그가 중얼거렸다
"저조차도" 라니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타서 레이디와 억지로라도 춤을 추어야겠군요"
"억지로라뇨?"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기에 그녀가 자신의 말에
노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베네딕트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서글픈 상태가 지속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신사된 도리가 아니겠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서글프다고 하셨나요?"
그는 어깻짓을 했다
"춤을 출 줄 모르는 아름다운 레이디라 그것은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죄악이라고 말씀드려야겠군요"
"만일 제가 귀하께 춤을 가르쳐 주어도 좋다 허락한다 쳐도..........."
"레이디께서 제가 춤을 가르칠 기회를 주시는 것은 어차피 정해진 수순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만일' 귀하께서 제게 춤을 가르쳐 주어도 좋다 허락한다 쳐도 말입니다
어디서 교습을 하시겠습니까?"
베네딕트는 턱을 치켜들고 무도회장 안을 훑어보았다
키가 180하고도 5센티가 더 큰지라 이 방안에서 키로는 손가락 안에 꼽힐 지경이었기에,
손님들 머리 위를 훑어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테라스로 물러가면 될 테지요"그가 마침내 말했다
"테라스라고요?" 그녀가 되물었다
"다른 분들도 꽉 차 있지 않을까요? 오늘밤은 날씨도 좋고 하니"
그는 앞으로 쓱 몸을 굽혔다 "사실의 테라스라면 그렇지 않을 겝니다"
"사실의 테라스라 하셨습니까?" 그녀가 재미있다는 투로 물었다
"대답해 주시지요 귀하께서 어찌 사실의 테라스를 아시는지요?"
베네딕트는 경악에 가까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마, 그녀가 날
모른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 런던 전체가 그의 정체를
알아주리라 기대할 정도로 자신을 높이 사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브리저튼의 사람이 아니던가 브리저튼 가 사람을 한 명이라도 만나본 적이 있다면
그 형제를 알아보는 것은 무엇보다도 쉬운 일 그는 씁쓸하게 생각했다
비록 자신을 그저 '넘버 투' 로만 알아보는 것이 전부라 할지라도 말이다
"제 질문에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신비스런 레이디가 다시금 주의를 상기시켰다
"사실의 테라스 말입니까?" 베네딕트는 그녀의 손을 입가로 가져가 섬세한 실크 장갑에
입을 맞췄다
"그저 저 나름대로 아는 방법이 있다고만 해둡시다"
그녀는 웬지 썩 내켜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손가락을 잡아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래 봐야 몇 센티미터 가까워진 것이 고작이지만, 갑자기 얼굴만 내밀면
그녀에게 키스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오시지요"그가 말했다 "저오 춤을 춰주십시오" 그녀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그 순간 베네딕트는 자신의 인생이 영원히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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